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에서
천천히 귀 기울이는 사랑의 방식에 대하여
‘듣는 사람’.
15년 차 라디오 PD이자 인기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을 9년째 흔들림 없이 제작하고 있는 최다은 PD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씨네21〉에서 음악 칼럼을 연재하고,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음악을 해설하고 음악 언어를 번역해 온 그는 “결코 듣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친구의 취향에 맞춰 공테이프에 컴필레이션 음반을 만들던 여중생 시절부터 프로 뮤지션을 꿈꾸던 음대생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직업을 바꿔가며 듣기와의 관계를 갱신해온 최다은 PD는 ‘듣는 일’이 단순히 소리를 받아들이는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시간과 관심을 기꺼이 내어주는 능동적인 일임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가만히 귀 기울여 들었던 소리’들이 위기의 순간마다 자신을 안아주고 일으켜 세워주었음을 깨닫는다.
《비효율의 사랑》는 최다은 PD가 ‘듣는 사람’으로서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과 깨달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첫 산문집이다. 책은 한 사람의 일과 삶을 따라가며, ‘귀를 기울여 듣는 일’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주는지, 그렇게 ‘들리는 소리’가 얼마나 우리 삶을 빛나게 하는지 오롯이 담아낸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 오디오 콘텐츠에 대한 고민부터 본업을 하면서도 오랫동안 팟캐스트까지 제작하고 진행할 수 있었던 비결,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며 음악을 나누는 선곡의 기쁨, 언어 없는 음악의 세계에서 소통할 때의 희열, 다양한 모습의 찾아왔던 위기의 순간들, 갑작스레 찾아온 이명 증상에 적응하며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되는 과정까지. 책은 삶에 녹아 있는 풍요롭고 다채로운 ‘듣는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조명한다. 덧붙여 어렵게만 느껴지는 현대음악과 클래식에 대한 다정하고 친절한 소개도 잊지 않는다.
《비효율의 사랑》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듣기’가 사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강력한 ‘사랑’의 방식인지 들려주면서 독자에게 조용히 귀 기울이는 삶이 주는 행복과 희망을 건네준다.
“듣는 게 곧 사랑의 행위라는 말의 의미를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온전히 이해했다. 듣는다는 건 소중한 내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다. 경청은 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을 때가 아니라 내용과 상관없이 상대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쓰겠다는 결심이 있을 때 이루어진다. (…) 나는 저마다의 풍경에, 한 인간의 내면에 교향곡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점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린 어느새 서로를 단선으로만 파악하게 될 것이다.”_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