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살짝 구겨진 은박지처럼 선명하고 눈이 부시다”
흐려진 존재들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다정한 숨결
부서지고 춤추고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한 희망의 노래
슬픔으로 얼룩진 삶의 장면들을 감각적 이미지와 깊이 있는 감성의 언어로 묘사해온 현대문학상 수상 시인 이기성의 『감자의 멜랑콜리』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폭력과 광기가 뒤섞인 시대의 그늘진 이면을 꿰뚫어 보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하고 시대의 불행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깊은 사유의 세계를 보여준다. 분노와 슬픔을 간직하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다정한 결기와 기품”(김경후, 추천사)이 깃든 견결한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을 준다. 현실의 고통에 주저하지 않고 다가가, 이를 기억하고 새기려는 단단한 결의가 드러나는 시편들에서 시인이 우리의 삶과 시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해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예기치 못한 비극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한복판에서도 뜨거운 마음으로 타인의 슬픔을 헤아릴 때 비로소 피어나는 희망을 아는 그의 시적 화자들은 이번 시집에서도 그 힘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