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산 자락이 냇물을 건너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던 곳, 아랫마을과 윗마을 사이로 논은 바다처럼 펼쳐지고 낮은 산기슭에는 밭이 숨 쉬던 그 고요한 시골에서 나는 자랐습니다.
낮에는 흙을 일구시고 밤이면 사랑방에 등불을 밝히시던 할아버지. 한문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낮게 흥얼거리시던 시조 한 수가 내 어린 잠자리를 적셨습니다. 가끔 동네 어른들이 모여 한시를 논하고 시조를 지을 때면 나는 말없이 곁에 앉아 그 목소리들을 이불처럼 덮고 잠들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내 마음 밭 어딘가에 작은 씨앗 하나가 묻혔을 것입니다.
세월은 그 씨앗을 잊은 듯 지나갔지만 2022년, 시편을 읽으며 잠들어 있던 숨결이 다시 깨어났습니다. 어린 날의 꿈이 조용히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시는 내게 기적입니다. 배우지 못한 채 시작한 길,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내려가던 날들. 시가 되는지 알지 못한 채 쓰고 또 쓰며 나는 비로소 한 줄의 무게를 배웠습니다.